미국 남북전쟁 이후 테네시주 펄래스키에서 6명의 퇴역군인에 의해 탄생한 백인 우월주의,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개신교 근본주의, 반가톨릭주의, 반동성애 성향 사이비 종교 및 테러리스트 집단이다. 줄여서 KKK단이라고 불린다.
이름의 의미는 원(circle)을 뜻하는 그리스어 'kyklos'와 집단을 뜻하는 영어 단어 'clan'을 합성하여 총소리 의성어와 비슷한 어감이 나는 명칭으로 만든 것. 한국어는 철컥단 정도로 번역이 되겠다.
이름대로 흑인 척살이 주된 활동이었다. 모임의 대표는 대마법사(Grand Wizard)라고 하고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있으며 전사한 남부연합군 병사들의 혼령임을 자처하고 흰옷을 입는 등의 차림새를 했다. 그러다가 이 이미지가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하는 짓도 하고 다니는 꼴도 음침하기 때문이다.
상징은 하얀 고깔두건. KKK의 악명 때문에 미국에서 사회적 매장을 각오해야 한다. 또 다른 상징으로는 불타는 나무 십자가가 있다.
현재 KKK 하면 떠오르는 음산한 이미지들은 2차 창설 때부터 나온 것들이다. 1차 때는 그냥 아무 옷에다 두건만 뒤집어 쓴 수준이었고 십자가 태우기 의식은 없었다. 나중에 2차 창설 때 음산한 이미지로 공포감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 보면 된다.
처음 창설된 때는, 남북전쟁 후 연방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급진파들이 해방된 흑인들을 정치세력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내전 이전 백인들의 권력구조를 분쇄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남쪽 백인들이 1866년 조직했다. 남부군 출신의 장교와 병사들이 주축이 되었다. 초대 회장은 남북전쟁 당시 남군 최고의 기병사령관으로 이름을 떨쳤던 노예상인 출신 장군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이다.
놀라운 점은 원래는 레크리에이션 집단으로 결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친목을 다지며 함께 춤추고 노는 게 일이었다. 설립 초기엔 나름대로 남부인들의 자존심 회복을 외치는 성명 발표와 시위행동을 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창단되고 1년 정도 지나 슬슬 간부들 사이의 친목질이 시작되고 회장인 베드퍼드 포레스트가 영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을 들어 반발파가 만들어지는 등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레크레이션 집단답게 시시하고도 웃긴 문제로 갈등이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간부 모임에서 KKK단 자신들이 특별해야 한다며 회장을 임페리얼 위저드라 불러야 한다는 발언을 내놓더니 얼마 후엔 위계제도를 공식안건으로 내놓아 KKK단 회장의 공식 명칭을 임페리얼 위저드로 바꾸고, 더 나아가 주요 간부는 드래곤, 주요 간부의 보좌직들은 타이탄, 보좌직들에게 지시를 직접 받는 현장 실무자들은 사이클롭스라고 부르자는 맛이 간 행보를 밟는다.
베드퍼드 포레스트는 이들의 행동을 말렸지만 민주주의를 앞세운 간부들의 발언에 밀렸다. 허나 "상대하기 짜증나니 그만둘래요"라고 외치고 중도하차하자니 자신을 KKK단의 회장으로 밀어준 사람이 하필 남북전쟁 당시 남군 최고의 영웅이었던 로버트 E. 리 장군이라 이대로 물러났다간 리 장군의 평판에도 영향이 갈 것 같고 무엇보다 회원들이 베드퍼드 포레스트의 탈퇴를 인정하지 않았다. 불인정 사유는 한 번 회장은 영원한 회장이다라는 회칙에 기반한 논리였다. 학벌과 경제력, 평판과 신임에 큰 책임감까지 가지고 있던 베드퍼드 포레스트를 훌륭한 바지사장감으로 본 회원들이 회칙과 민주주의를 앞세워 베드퍼드 포레스트를 억지로 묶어둔 것이었고, 이후 회장의 제지를 씹곤 KKK단의 활동을 엉뚱하게 밀고 가더니 정당방위를 빙자한 흑인대상 폭력사건까지 줄줄이 일으켜 사회적인 문제집단이 된다.
북부가 흑인 표를 흡수해 정치공세를 펴는 점을 타파하기 위한 백인 친목모임으로 계획된 KKK단이 되려 흑인 표를 집결시키는 사건을 연달아 일으키자 현실주의자였던 포레스트는 KKK단이 더 이상 남부의 자존심 회복과 권리 신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선언했으며 KKK단 회칙의 회장은 일년에 한 번 마음대로 활동을 정할 수 있고 회원들은 이의를 제기 못 한다를 발동, 반발하는 회원들의 의사를 씹어버리고 해체를 선언해버렸다. 이에 KKK단은 "너는 제명되었으니 이제 회장 아니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독립적인 활동을 계속해나간다.
방출된 포레스트는 경력으로 삼을 만한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말년에는 흑인에 대한 부당한 폭력에 반대하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이 과정에서 포레스트가 직접 흑인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흑인의 공민권 부여에 찬성했다는 설이 나와 진위 여부를 놓고 말이 많았는데 1877년 뉴욕 타임스 기사에 포레스트가 말년에 흑인집회에서 연설한 일화가 실려있다.
이후 1870년 연방법이 제정되어 정식으로 공권력에 의한 단체해산을 맞이했다. 해산 직전 이들은 연방법 제정이 흑인들의 표를 얻어 남부를 탄압하려는 북부의 음모라 주장했으나 씨알도 안 먹혔고 해체 후 음지에서 계속 사고를 치며 점점 더 막장 집단으로 변모해간다.
두번째 창설, 1915년 조지아 주에서 윌리엄 조지프 시먼스가 이끄는 일단이 백인 지배 원리를 내세우면서 제2차 쿠 클럭스 클랜을 선언한다. 이들은 1차 KKK가 단순히 흑인들을 적대한 것에 비해 더욱 과격해져서 인종적, 종교적, 민족적 소수집단을 모두 적대시하며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사회불안과 민심의 동요를 배경으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KKK의 모습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전성기에는 회원이 무려 200여만 명에 이를 정도로 부풀었고, 심지어 인디애나를 시작으로 다수의 미국 상원의원, 지사 등 정치가들도 소속되었다고 한다. 공공연히 클랜(Klan)이라는 명칭까지 사용할 정도였으니 그 당시 이들이 미국 사회에 끼친 해악의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미주리주 상원의원이자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된 해리 S. 트루먼도 클랜 단원이었다. 이는 남부에서는 한때 클랜 가입 여부가 정치생명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입 사실과는 정반대로 트루먼은 미군의 인종통합을 명령했으며 할렘 가에서 유세 연설을 한 최초의 민주당 대통령이다.
1928년 초에는 워싱턴 D.C에서 대규모 거리행진을 벌임으로서 전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이런 급속한 확대가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구성원 대부분이 사회에 불만을 가진 불량배들이라 사회정화를 한답시고 비밀술집이나 매춘굴, 도박장을 기습해 폭력을 자행했고, 유색인종은 물론 가톨릭 교도나 유색인종에 호의적인 백인, 심지어 이혼 여성들까지 마구 공격하는 데 이르자 WASP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의 분노를 사고 말아 이를 기점으로 정치적 기반이 급격하게 쇠퇴하며 몰락이 시작되었다.
특히 KKK단 지도자 데이비드 스티븐슨이 일으킨 강간, 폭행, 살인 사건이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며 그나마 남아있던 보수 지지층까지 싸그리 등을 돌렸고, 이로 인해 KKK 전국조직이 붕괴되면서 2차 KKK도 끝장이 났다.
세번째 창설, 3차 KKK단은 공민권 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재건되어 수많은 테러 사건을 일으켰다. 대표적 피해자로는 사회운동가 도로시 데이가 있다. 어떤 지경이었느냐면 인권운동가들의 행렬이 자기 마을을 지난다고 하자 경찰서장이라는 작자가 KKK단에게 '15분 줄 테니 그 동안 날뛰어라' 하고 대놓고 방조했던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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